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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잉아트는 2025년 9월 9일부터 10월 4일까지 유재연 작가의 개인전 ≪Weeping Brushes≫를 개최한다.
유재연의 붓들은 울고 있다. 물감을 머금은 채 힘없이 고개를 떨구거나, 축 늘어진 몸을 조용히 화면 한쪽에 기대고 있다. 이 모습은 단순한 슬픔의 은유가 아니다. 창작 과정 속에서 차곡차곡 쌓인 감정의 층위, 회의와 애정이 얽힌 손끝의 기억, 그리고 자기 자신을 향한 끝없는 질문들이 고스란히 배어 있는 풍경이다. 붓의 무게는 곧 작가가 감당해온 창작의 무게이며, 그 속에는 포기와 침잠의 그림자와 함께 다시 일어설 수밖에 없는 의지의 흔적이 공존한다.
철학자 빌렘 플루서(Vilém Flusser)는 도구를 단순한 물리적 연장이 아니라 사용자의 사고와 몸짓을 반영하는 존재로 보았다. 때로는 도구가 사용자를 거꾸로 이끄는 힘이 되기도 한다. 유재연의 작업에서 붓은 단순히 색을 입히는 매개체가 아니라, 작가의 내면을 드러내는 상징적 주체로 기능한다. 화면 속 늘어진 붓들은 단순한 사물이 아니라 창작의 긴장과 고뇌, 그리고 의지의 무게를 시각화한 자화상이 된다.
이번 전시 ≪Weeping Brushes≫에서 보여지는 작업들은 기존의 “Night Walker(나이트 워커)” 시리즈의 연장선상에서 밤의 작업실을 탐구한다. 화가, 조각가, 글 쓰는 작가, 시인처럼 창작을 업으로 삼는 이들뿐 아니라, 부엌 테이블이나 작은 책상에 앉아 아무도 보지 않을 글을 쓰고, 아무도 보지 않을 그림을 그리는 이들의 시간을 함께 떠올린다. 무언가를 만들어내느라 밤을 꼬박 새우고, 생각을 토해내듯 노트에 무언가를 끄적이는 경험들에 대한 사유가 이번 전시의 또 다른 바탕을 이룬다.
작가는 또한 작업 과정 속 사소한 순간들에 주목한다. 팔레트 위 덩어리진 물감 속에서 불현듯 빛나는 색을 발견하거나, 겹겹이 겹쳐진 물감 사이로 드러나는 첫 선에서 느끼는 희열, 세척되는 붓의 물결과 거품 속에서 발견되는 아름다움은 창작의 여정 속에 숨은 기쁨이다. 심지어 젯소 위에 남겨진 날벌레의 흔적조차 우연한 기록으로 남아, 작업실은 사소하지만 의미 깊은 사건들이 쌓여가는 장소로 확장된다.
밤의 공원을 홀로 걷는 이들의 자유와 고독에서 출발한 작가는 좀 더 본연의 내면 풍경에 집중한다. 불 꺼진 작업실, 붓과 연필, 널부러진 재료와 메모들, 벽에 기대어 있는 ‘과정 중의 그림들’까지 이 모든 사물과 장면은 실내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그림 속에서 서로 반응하며 교차한다. 그렇게 작가의 작업실은 ‘안과 밖의 경계가 불확실한 풍경’으로 자리한다.
이번 전시는 작가가 홀로 마주하는 고독과 몰입, 그리고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도구와 공간을 함께 사유하게 한다. 늘어진 붓은 좌절이자 생명의 상징이며, 고요한 작업실은 외로움과 동시에 창작의 본질적 에너지를 품는다. 유재연의 회화는 도구와 인간, 공간과 내면의 경계를 허물며 새로운 풍경을 제시한다. 창작이 품은 고통과 자유, 그리고 그 사이에서 피어나는 찬란한 순간들을 함께 경험 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이번 전시에는 작가의 새로운 신작인 “Night Studio, Weeping Brushes” 신작 10여점과, 오일 드로잉 그리고 작업 재료인 메모지와 붓을 형상화한 조각 작업을 함께 선보인다. 특히 작은 메모 조각과 붓 조각들은 작가의 런던 작업실의 벽 구조를 기반으로 제작된 나무 프레임에 린넨을 씌운 파티션 구조물에 설치되어 회화와 조각, 설치가 어우러진 새로운 공간적 경험을 제시한다.

∙ 전 시 명 : Weeping Brushes
∙ 참여작가 : 유재연 개인전
∙ 전시기간 : 2025년 9월 9일(화) – 10월 4일(토)
∙ 전시장소 : 도잉아트 서울시 서초구 남부순환로 325길 9 B1 (11:00-18:00)
∙ 오프닝리셉션 2025년 9월 13일 (토) 17:00~ 도잉아트